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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공작


아마도 진화란 걸 다윈이 맨 처음 생각했다거나, 진화론이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다 정리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진화에 관해서는 다윈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다윈이 그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을 알아낸 것이며, 다윈 시절부터 진화에 관해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적지 않았고, 그 후로 그에 대한 논쟁과 관찰, 실험을 통해 진화론이 더 정교화되어 왔다. 그래서 진화론, 혹은 진화학은 분명히 입증이 가능한 과학이며, 역동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윈 시대 이후 가장 논쟁이 되었던 진화론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사람마도 조금씩 달리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게 바로 이타주의와 성 선택이다. 헬레나 크로닌의 『개미와 공작』에서 개미는 바로 이타주의를, 공작은 바로 성 선택을 대표한다. 당연히 『개미와 공작』은 이타주의와 성 선택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개미와 공작』이 개미와 공작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는 책도 아니며, 이타주의와 성 선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설명’하는 책은 아니다. 헬레나 크로닌의 박사 학위 논문이기도 한 이 책은, 진화학의 그 두 논쟁을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다룬 책이다. 그래서 교양 도서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학술적인 책이라 해야 더 옳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쉽지 않다. 헬레나 크로닌은 독자들이(여기서 상정한 독자가 어떤 사람일까?) 이타주의가 무엇인지, 성 선택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개념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또한 진화론의 대세가 유전자 중심주의라는 것도 당연시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유전자가 선택의 기준이며 단위라는 것을 굳이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그런 전제 하에서 성 선택과 이타주의에 관한 논쟁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그 논쟁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게’ 논의하고 있다. 그 논쟁의 한 축은 당연히 다윈이다. 한 축이 다윈이라는 얘기는 다른 축이 있다는 얘기이고, 그건 또한 다윈이 절대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축은 바로 월리스이다.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설의 공동발견자이며 다윈보다 더 다윈주의자라 불리는 월리스가 다윈가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던 주제가 바로 성 선택과 이타주의다. 그 지점부터 출발하는데, 주로는 성 선택과 이타주의가 잘못 해석되어 온 역사를 짚고 있다. 성 선택과 관련해서는 암컷의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월리스를 비롯한 적지 않은 과학자들의 편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이타주의에 관해서는 그것이 자신의 진화론에서 큰 논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비용’ 문제에 관해서 상당히 무지했거나 무시했던) 다윈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헬레나 크로닌은 성 선택과 이타주의에 관해서 무엇이 옳은 견해인지에 대해서는 결론짓지 않는다. 그녀 자신은 그 답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만,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은 이 역동적인 논쟁을 재미없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많은 증거들에 대한 무시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성 선택과 이타주의에 관해서 부인하는 진화학자는 없지만(아마도), 그것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 중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이 학문은 역동적이며, 아직도 발전할 부분이 많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책이다. 그래서 이 역동적이며 흥미진진한 분야의 최신 발견과 논의는 담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책을 고전이라고 칭하기에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진화론의 논쟁사를 정리하는 데는 무척 의미 있는 책이다. 물론 그 논쟁을 진화론을 부정하는 증거로 삼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이 책의 거죽만 볼 것이다. 과학자들이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논쟁을 심화시켜나가며, 또한 정리해나가는 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걸 보여줌에도.
이타성과 성 선택은 진화의 결과인가?
협동과 섹스(性)의 진화라는
다윈이 남긴 150년의 난제를 해결한 고전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 은 이타주의와 성 선택의 수수께끼를 둘러싼, 진화론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토론의 과정과 그 성과를 집대성한 역작이다. 저자인 헬레나 크로닌은 자신의 런던 정치 경제 대학(LSE) 박사 학위 논문이었던 이 책의 출간으로 일약 세계적인 진화 생물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부터 존 메이너드 스미스와 리처드 도킨스에 이르는 다윈주의의 역사를 관통해서, 일개미들의 자기희생과 수컷 공작들의 아름다운 깃털이 개체들의 번식과 생존이라는 틀을 넘어서 다윈주의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학문적 진화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낸 덕분이다.

이 책은 개미의 이타성과 협동, 공작들의 깃털과 짝짓기가 진화하는 과정을 각각 인간의 도덕성과 미적 감각의 발달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킴으로써, 진화 생물학과 과학 철학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지식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도킨스, 메이너드 스미스, 최재천 등 현대 다윈주의를 대표하는 수많은 학자들을 매혹시킨 이 시대 진화론의 고전인 개미와 공작 에서 독자들은 고전 다윈주의의 핵심 주제로부터 비롯된 현대 다윈주의의 탁월한 성과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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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다윈보다 더 다윈적인 13

1부 다윈주의, 그 경쟁자들과 배교자들
1장 살아 있는 기록 보관소 23
2장 다윈 없는 세상 29
3장 신?구 다윈주의 103
4장 설계의 경계 143
2부 공작
5장 공작 꼬리 속의 힘 193
6장 오직 자연 선택뿐 205
7장 암컷이 수컷의 모양을 결정한다고? 271
8장 분별 있는 암컷은 섹시한 수컷을 선호하는가? 297
9장 면밀한 실험이 행해질 때까지…… 331
10장 다윈주의의 유령들을 뛰어넘어 371
3부 개미
11장 현재의 이타주의 403
12장 그 이전의 이타주의 425
13장 사회성 곤충들: 친절한 친족 465
14장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관례의 힘 493
15장 인간의 이타주의: 자연적인 것인가? 513
16장 이종교배 603
에필로그 681
도판에 대한 감사의 말 683
다윈과 월리스의 편지에 대한 주석 687
참고 문헌 695
찾아보기 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