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 있는 뿌리서점이라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나 가져왔다. 워낙 유명한 탓에 읽지 않았어도 제목과 저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책에는 법정 스님의 짧은 글들이 수록되었다. 분량이 한두 페이지로 부담스럽지 않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서 술술 읽힌다. 예삿일을 글로 풀어 말씀하시는데도 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에 스님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인 듯하다. 스님이 일상생활 중에 얻은 깨달음을 글로 풀어쓰셨는데, 참 재미있다. 에피소드를 찬찬히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자극적인 글과 영상이 판치는 요즘엔 만나기 힘든 글이 아닌가 싶다. 1970년대, 대략 50년 전에 쓴 글이 많다. 옛 것, 혹은 낡은 것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변화가 잦은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가르침을 담은 책이 아닐까 싶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 책임감을 강조하는 스님의 말씀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삶을 살고 있나 되묻게 된다.
꾸준히 오래 팔리는 책으로 법정스님의 수필집 무소유 를 맞춤법과 교정부호를 손질해 양장본으로 꾸민 것. 이번에 나온 것은 어렵고 잘 쓰이지 않는 한문을 한글로 쉽게 풀어 고쳐 썼다. 손바닥만한 문고본에 글만 다닥다닥 붙여 실은 기존 판과 달리, 한 편이 끝날때마다 충분한 여백을 두고 책크기도 4·6배 변형판으로 키우고 삽화로 이철수의 판화를 실은 구성이 산뜻하다.
끊임없이 소유하고 빼앗기 위해 싸워온 것이 인간사(人間史)이고 보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범인(凡人)의 삶이다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 청렴하게 살수는 없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은 미련 없이 마음을 비우는 것, 혹 내 것에 대해서도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무소유 는 우리의 삶을 보다 여유롭게, 평온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포근한 가르침이다. 소유욕으로 아등바등하기보다는 조금은 빈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복잡한 현대 사회이나마 보다 건강하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뭔가를 구하려 노력하되 딱 거기까지만 하기. 전전긍긍하고 내심초사 집착하고 고통받는 것이 얼마나 낭비적인 소모인지, 어차피 내 손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만물의 이치인데 말이다.
무소유 는 바로 그런 책이다.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고 일찍이 몰랐던 진리를 깨우쳐주는 책은 아니지만 우리의 영혼을 맑게 닦아주는 거울과 같은 책이다. 그래서 쉬 넘어가지 않고, 여러 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무릇 사람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소유 가 독자들의 오랜 사랑을 받는 까닭은 너무 빼곡이 차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여백의 미를 이해시키고, 나아가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1. 복원 불국사
2. 나의 취미는
3. 비독서지절
4. 가을은
5. 무소유
6. 너무 일찍 나왔군
7. 오해
8. 설해목
9. 아파트와 도서관
10. 종점에서 조명을
11. 흙과 평면 공간
12. 탁상 시계 이야기
13. 동서의 시력
14. 회심기
15. 조조할인
16. 나그네 길에서
17. 그 여름에 읽은 책
18. 잊을 수 없는 사람
19. 미리 쓰는 유서
20. 인형과 인간
21. 녹은 그 쇠를 먹는다
22. 영원한 산
23. 침묵의 의미
24. 순수한 모순
25. 영혼의 모음
26. 신시 서울
27. 본래무일물
28. 아직도 우리에겐
29. 상면
30. 살아남은 자
31. 아름다움
32. 진리는 하나인데
33. 소음기행
34. 나의 애송시
35. 불교의 평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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